작성일 댓글 남기기

니체의 ‘새로운 우상’이 소소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1장’,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를 읽었습니다. 니체는 여기서 국가를 ‘새로운 우상’이라 부르며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국가라고? 그것이 무엇인가? 자! 이제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대들에게 민족의 죽음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국가는 모든 냉혹한 괴물 가운데서 가장 냉혹한 괴물이다. 그 괴물은 냉혹하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

19세기 독일 철학자의 이야기가 2026년을 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생각보다 많습니다.


니체가 말한 ‘새로운 우상’이란

니체 시대에 신의 권위가 무너지자, 사람들은 새로운 믿음의 대상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국가였죠. 국가는 “나는 곧 민족이다”라고 말하지만, 니체는 이것이 거짓말이라고 봤습니다.

국가는 개인의 고유함을 지우고 모두를 똑같이 만들려 합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국가가 정해주고, 사람들은 그 기준에 맞춰 살아갑니다. 니체의 표현대로라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태어난 곳에서 국가가 발명되었다”는 것이죠.


2026년, 우상은 어디에나 있다

니체가 비판한 건 단지 정부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모든 것이 ‘새로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우상들:

  • 알고리즘 —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보여주는 것만 보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것
  • 트렌드 — “요즘은 다 이렇게 한다”는 말에 나의 취향과 판단을 포기하는 것
  • 성공 공식 — “이렇게 하면 된다”는 누군가의 프레임에 내 삶을 끼워 맞추는 것
  • 여론 — 다수가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니체의 경고는 명확합니다. 이런 것들이 “나는 너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할 때, 의심하라는 것이죠.


소소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배울 것

그렇다면 니체처럼 세상과 단절하고 산속에서 살아야 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니체도 그걸 말한 게 아닐겁니다.

첫째, 내가 왜 이것을 원하는지 물어보기

“다들 그러니까”, “원래 그런 거니까”라는 이유로 선택하고 있다면, 그건 내 선택이 아닙니다. 직장을 다니는 것도, 투자를 하는 것도, 심지어 이 글을 읽는 것도 — 내가 진짜 원해서인지 한 번쯤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경계하기

니체는 말합니다. “국가가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인간이 시작된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것, 모두가 달려가는 곳에서 한 발 물러서서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그곳에 진짜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그냥 군중심리인지.

셋째, 작은 영역에서 ‘나의 것’을 만들기

거창한 혁명이 아니어도 됩니다. 취미, 생각, 글쓰기, 대화 — 작은 영역에서라도 남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것. 니체가 말한 “창조하는 자”는 예술가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마무리하며

니체를 읽으면 불편해집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흔들리니까요. 하지만 그 불편함이 생각의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독서모임에서 이 장을 읽으며 나눈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습니다. “우리도 결국 무언가의 우상을 따르며 살고 있는 거 아닐까?”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죠.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새로운 우상’을 따르고 계신가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