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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천 개의 목표’ — 남의 정답으로 내 인생을 살지 마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5장, “천 개의 목표와 하나의 목표에 대하여”입니다. 니체가 민족과 가치, 그리고 인간의 목표를 이야기합니다.

“천 개의 민족이 있었고, 천 개의 목표가 있었다. 천 개의 목에 걸린 천 개의 멍에가 아직 없다. 하나의 목표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니체는 묻습니다. 당신이 따르는 ‘좋음’은 누가 정한 건가?


니체가 말한 ‘천 개의 목표’

니체는 여러 민족을 예로 듭니다. 그리스인에게 좋은 것, 페르시아인에게 좋은 것, 유대인에게 좋은 것이 모두 다르다고요.

“어떤 민족에게 좋은 것이 다른 민족에게는 수치이고 모욕이다.”

한 민족이 “이것이 선이다”라고 정하면, 그게 그 민족의 가치가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가치를 마치 절대적 진리인 것처럼 따릅니다.

니체의 포인트는 이겁니다. ‘좋은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가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걸 만든 건 대부분 그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이었다.


2026년, 우리가 따르는 ‘좋음’은 누가 정했나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좋은 삶’의 기준, 그건 어디서 왔을까요?

우리 시대의 ‘천 개의 목표’:

  • 좋은 직장 — 대기업, 공무원, 전문직. 누가 이게 ‘좋은’ 거라고 정했나?
  • 성공의 기준 — 연봉, 집, 차. 이 공식은 어디서 왔나?
  • 행복한 삶 —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이게 모두에게 맞는 정답인가?
  • 자기계발 — 아침 5시 기상, 독서, 운동. 이것만이 성장인가?

니체 식으로 보면, 이것들은 “우리 사회가 정한 가치”일 뿐입니다. 절대적 진리가 아니에요. 다른 시대, 다른 문화에서는 완전히 다른 게 ‘좋은 것’이었습니다.


소소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배울 것

니체는 기존 가치를 무조건 거부하라는 게 아닙니다. “이게 정말 내 가치인가?”를 물어보라는 겁니다.

첫째, ‘당연한 것’을 의심하기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이 나올 때, 한 번 멈춰보세요. 원래 그런 게 아니라, 누군가 그렇게 정한 겁니다. 내가 동의하는지 안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예요.

둘째, 내 목표와 남의 목표를 구분하기

부모님이 원하는 삶, 사회가 인정하는 삶,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삶. 이게 내가 원하는 삶과 같은가요? 같다면 좋고, 다르다면 다른 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의 목표’를 스스로 세우기

니체는 “아직 하나의 목표가 없다”고 했습니다. 인류 전체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개인에게도 적용됩니다. 천 개의 남의 목표를 따르지 말고, 나만의 하나의 목표를 세우라는 것.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겠다”는 작은 선언 하나면 됩니다.


마무리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의 목표를 살아온 걸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 이었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안정적인 삶 — 이게 내가 정한 건지, 주변에서 주입된 건지 솔직히 구분이 안 된다고요.

니체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질문을 던집니다. “네가 따르는 가치는 누가 만들었나? 그리고 너는 거기에 동의하나?”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천 개의 남의 목표 속에서, 나만의 하나를 찾는 것. 그게 니체가 말하는 ‘창조하는 삶’의 시작입니다.

여러분의 ‘하나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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