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4장, “벗에 대하여”입니다. 니체가 우정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따뜻한 우정과는 좀 다릅니다.
“네가 벗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너를 보여주기 싫다면, 너는 아직 벗을 가질 자격이 없다.”
니체의 우정은 서로 기대는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를 더 높은 곳으로 밀어올리는 관계입니다.
니체가 말한 ‘벗’이란
니체는 친구를 **”너의 최선의 적”**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상하죠? 친구가 왜 적인가.
“너의 벗 안에서 너는 너의 최선의 적을 가져야 한다. 그에게 반대할 때 너는 그에게 가장 가까워진다.”
니체가 말하는 진짜 친구는:
- 네 말에 무조건 동의하는 사람이 아니다
- 네가 힘들 때 그냥 “괜찮아”라고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 네가 틀렸을 때 틀렸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 너를 편하게 두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 자극하는 사람이다
니체는 또 말합니다. “고독을 견딜 수 없는 자는 친구를 가질 자격이 없다.” 혼자 설 수 없는 사람은 친구에게 기대기만 하고, 그건 우정이 아니라 의존이라는 거죠.
2026년, 우리의 ‘관계’를 돌아보면
SNS에는 친구가 수백 명입니다. 카톡 연락처에도 수십 명이 있죠. 그런데 니체 기준으로 보면, 그중에 진짜 ‘벗’은 몇 명일까요?
현대의 관계 패턴:
- 위로 자판기 — 힘들다고 하면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만 반복하는 관계
- 공감 중독 — 서로 힘든 이야기만 나누고, 거기서 끝나는 관계
- 표면적 연결 — 좋아요 누르고, 생일 축하 댓글 달고, 그게 전부인 관계
- 동의 강요 — 내 편 들어주는 사람만 친구로 여기는 관계
니체 기준으로 보면, 이건 우정이 아니라 상호 위안에 가깝습니다. 서로를 성장시키지 않으니까요.
소소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배울 것
그렇다고 친구에게 매번 쓴소리만 하라는 건 아닙니다. 니체가 말하는 건 관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에요.
첫째, 혼자 있는 시간을 먼저 견디기
니체는 “고독을 못 견디면 친구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외로워서 만나는 관계는 서로에게 짐이 됩니다.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도 건강한 관계가 됩니다.
둘째, 불편한 말을 해주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기
“그건 네가 좀 이상한 거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친구. 듣기 싫지만, 그게 진짜 친구일 수 있습니다. 내 말에 항상 동의하는 사람은 편하지만, 나를 성장시키진 않아요.
셋째, 나도 ‘좋은 적’이 되어주기
친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그래도 네 선택이니까”라고 넘기지 않는 것.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지만, 진심으로 말해주는 게 진짜 우정입니다. 물론 방식은 부드럽게.
마무리하며
독서모임에서 이 장을 읽고 서로 물었습니다. “우리 모임은 니체가 말한 ‘벗’에 가까운가?”
매주 만나서 책 읽고, 서로 다른 해석으로 부딪히고, 가끔은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하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꽤 니체적인 관계더라고요.
편하기만 한 관계는 좋지만, 거기서 멈추면 서로 제자리입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지만 더 나은 곳으로 밀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니체 기준으로 당신은 운이 좋은 겁니다.
여러분에게 ‘최선의 적’이 되어주는 친구가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