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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리티 법안 상원 난항과 비트코인 9만 5천 달러 선 공방

최근 가상자산 시장은 제도권 편입을 위한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미국 상원에서 논의 중인 **’디지털 자산 시장 구조 법안(일명 클래리티 법안)’**의 전개 상황과 이에 따른 비트코인(BTC)의 현재 시세를 짚어봅니다.



1. 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 상원 논의 현황은?

당초 2026년 초 통과를 목표로 했던 클래리티 법안이 현재 상원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회의 연기: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는 당초 2026년 1월 15일로 예정되었던 법안 심사(Markup)를 전격 연기했습니다. 공화당 팀 스콧 의원을 중심으로 초당적 합의를 시도하고 있으나 내부 이견이 큰 상태입니다.

핵심 쟁점: 가장 큰 걸림돌은 스테이블코인 이자(Yield) 지급 금지 조항입니다. 코인베이스 등 주요 거래소들은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보상을 주는 행위를 막는 것은 산업을 고사시키는 악법”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반면, 은행권은 자금이 예금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우려해 해당 규제를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향후 전망: 코인베이스 CEO 브라이언 암스트롱이 지지를 철회하며 “나쁜 법보다 법이 없는 게 낫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법안이 대폭 수정되거나 표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2. 비트코인(BTC) 현재 시세 및 기술적 분석

법안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은 견고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시세 (2026년 1월 18일 기준): 비트코인은 현재 약 $95,000 ~ $95,300 사이에서 횡보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습니다.

시장 심리: 지정학적 불안과 인플레이션 완화 기대감이 교차하며 안전 자산으로서의 비트코인 수요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20일 이동평균선(EMA)인 $95,000 선을 지지선으로 삼아 $100,000 돌파를 위한 에너지를 응집하는 모양새입니다.

단기 관전 포인트: 상방으로는 $98,000 돌파 여부가 중요하며, 하방으로는 $93,700 라인이 강력한 지지선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클래리티 법안은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려는 시도지만, 스테이블코인 수익 구조를 둘러싼 ‘은행 vs 거래소’의 싸움으로 번지며 상원 통과가 불투명해졌습니다. 투자자들은 법안의 수정 방향이 시장 유동성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비트코인의 $100k 돌파 시점을 가늠해야 할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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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5000 시대 개막? 2026년 증시 전망과 투자 핵심 포인트

최근 국내 증시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국장 무시하던 제 경우 참 뼈 아픈데요..

2026년 1월 현재,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4,800선을 돌파하며 전인미답의 고지인 5,000포인트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반도체 랠리가 로봇, 방산, 조선 등 전 업종으로 확산되는 양상인데요. 과연 ‘오천피’는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주요 변수와 전망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왜 ‘코스피 5000’인가? 상승의 3대 동력

전문가들이 5,000선을 가시권으로 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반도체 실적의 레벨업: AI 혁명이 가속화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전망치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상향되었습니다. 이른바 ’15만전자’, ’90만닉스’ 설이 단순한 희망 회로가 아닌 실적 기반의 분석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주도주의 다변화: 과거에는 반도체 홀로 지수를 끌어올렸다면, 지금은 K-방산, 조선, 자율주행 로봇 등 다양한 섹터가 실적 뒷받침을 받으며 상승장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결실: 정부의 기업 밸류업 정책과 상법 개정 논의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강력한 순매수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2. 5000 안착을 위한 필수 조건

단순히 지수가 찍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안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숙제가 남아있습니다.

환율 및 금리 안정: 현재 1,400원 중반대의 고환율은 수출 기업엔 유리하지만, 외국인 자산의 환차손 우려를 키웁니다. 한국은행의 금리 정책 향방이 중요합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대응: 미국과 대만의 반도체 관세 합의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주주 환원 정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배당 확대 및 자사주 소각 등 실질적인 조치로 이어져야 합니다.

3.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미 지수가 많이 오른 상태에서 추격 매수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제안합니다.

1. 실적 기반의 ‘옥석 가리기’: 지수가 오를 때 다 같이 오르는 장세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이익 성장세가 뚜렷한 종목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해야 합니다.

2. 분할 매수 전략: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이 있으므로, 조정 시점을 노려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이 유효합니다.

3. 환율 변동성 체크: 환율이 ‘뉴노멀(New Normal)’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크므로 외환 리스크에 민감한 종목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코스피 5,000″은 단순히 숫자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했음을 증명하는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 속에서도 언제나 리스크는 존재합니다. 냉철한 분석과 함께 성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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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나 주가 폭등, ‘포스트 코로나’의 해답을 찾았나?

한때 코로나19 백신 수요 감소로 고전하던 모더나가 최근 다시 한번 시장의 주인공으로 등극했습니다. 이번 주가 급등의 핵심 원인을 짚어보죠.

1. 2025년 실적 전망 상회 및 재무 건전성 강화

모더나는 최근 발표에서 2025년 매출 전망치를 시장의 예상보다 높게 상정했습니다.

비용 절감 성공: 2025년 공격적인 비용 구조 개선을 통해 운영비를 대폭 줄였으며, 2026년에도 추가적인 비용 감축을 예고했습니다.

현금 보유력: 약 81억 달러에 달하는 탄탄한 현금 보유고를 바탕으로 연구개발(R&D)에 집중할 수 있는 체력을 증명하며 투자 심리를 회복시켰습니다.

2. 항암 백신 및 희귀질환 치료제의 가시화

이번 급등의 가장 큰 심리적 요인은 **’파이프라인의 확장’**입니다.

개인 맞춤형 암 백신: 머크(Merck)와 공동 개발 중인 흑색종 치료제 등 항암 백신 임상 3상이 순항 중이며, 2026년 초 주요 데이터 발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희귀질환 파일럿 프로그램: FDA가 모더나의 희귀질환 치료제를 특정 파일럿 프로그램에 선정하면서, mRNA 기술이 감염병을 넘어 다양한 난치병에 적용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습니다.

3. 차세대 백신(독감+코로나 콤보) 승인 임박

단일 코로나 백신에서 벗어나 ‘독감(Flu) + 코로나19’ 복합 백신 및 차세대 독감 백신(mRNA-1010)의 규제 승인 절차가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이는 매년 발생하는 계절성 백신 시장에서 모더나의 점유율을 고착화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주가가 단기간에 15~17% 이상 급등하면서 **기술적 과열 구간(Overbought)**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임상 결과나 규제 당국의 결정에 따라 변동성이 클 수 있으므로, 장기적인 파이프라인의 성과를 지켜보며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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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연준 의장 수사 착수, 미국 경제의 독립성이 흔들리나?

최근 미국 금융 시장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미 법무부(DOJ)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 대한 공식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입니다. 세계 경제의 사령탑이라 불리는 연준 의장이 수사 대상이 된 것은 유례없는 일입니다.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과 향후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수사의 표면적 이유: 25억 달러 규모의 ‘건물 보수비’

미 법무부와 워싱턴 DC 연방 검찰이 내세운 수사 명목은 연준 본부인 ‘에클스 빌딩’의 리모델링 공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산의 급격한 증액: 초기 19억 달러였던 공사비가 최근 25억 달러(약 3.5조 원)까지 치솟으면서 관리 부실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의회 위증 혐의: 파월 의장은 과거 의회 증언에서 “호화 시설은 없다”고 밝혔으나, 검찰은 전용 엘리베이터와 옥상 정원 등 이른바 ‘VIP 시설’의 존재 여부를 두고 파월 의장이 거짓 증언을 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2. 수사의 이면: ‘금리 인하’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수사가 단순한 회계 조사가 아닌 정치적 보복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와의 갈등: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요구해 왔으나,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이유로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왔습니다.

파월의 정면 돌파: 파월 의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수사는 금리 결정에 응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이라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맞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3.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

연준 의장에 대한 수사 소식은 즉각적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달러화 약세와 금값 폭등: 중앙은행의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달러 가치가 요동치고 있으며, 안전 자산인 금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입니다.

통화 정책의 불확실성: 의장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경우, 향후 미국의 금리 결정 방향이 정치적 외압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4. 향후 전망: 전직 의장들의 이례적 결집

현재 재닛 옐런, 벤 버냉키 등 전직 연준 의장들은 이번 수사가 “미국 경제의 근간인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파괴하는 행위”라며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파월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오는 5월 파월 의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법적 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 경제인가 정치인가?

이번 파월 수사 사태는 단순한 개인의 비리 의혹을 넘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는 민주주의 경제의 원칙이 시험대에 오른 사건입니다. 투자자들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시장 변동성이 극심해질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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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아이와 결혼’ — 결혼은 목표가 아니라 도구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0장, “아이와 결혼에 대하여”입니다. 니체가 결혼을 이야기합니다. 예상대로, 평범한 결혼 예찬은 아닙니다.

“너는 젊고 결혼을 원한다. 그러나 내게 먼저 답하라. 너는 아이를 원할 자격이 있는 자인가?”

그대의 소망에는 짐승과 절박한 욕구가 들어있는가? 아니면 고독 때문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과의 불화 때문인가?

그대는 그대 자신을 넘어서 자신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그대는 우선 그대의 몸과 영혼을 반듯하게 세워야 한다.


니체는 묻습니다. 당신의 결혼은 ‘도피’인가, ‘창조’인가?

니체가 말한 ‘결혼’이란

니체는 결혼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왜 결혼하는가를 묻습니다.

“결혼: 나는 이것을 두 사람이 하나보다 더 큰 것을 창조하려는 의지라고 부른다.”

니체가 보는 좋은 결혼은:

  • 외로워서 하는 결혼이 아니다
  • 사회적 압박 때문에 하는 결혼이 아니다
  • 서로를 소유하려는 결혼이 아니다
  • 둘이 함께 ‘더 높은 것’을 만들어가려는 결혼이다

그리고 그 ‘더 높은 것’의 상징이 바로 아이입니다. 니체에게 아이는 단순한 출산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미래, 가능성, 창조물입니다.


2026년, 우리는 왜 결혼하는가

결혼율은 떨어지고, 비혼 선언은 늘어납니다. 동시에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도 여전합니다. 니체의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현대의 결혼 동기들:

  • 나이가 됐으니까 — 주변에서 다 하니까, 적당한 때가 됐으니까
  • 외로우니까 — 혼자 있기 싫어서, 누군가 곁에 있었으면 해서
  • 안정이 필요하니까 —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기댈 곳이 필요해서
  • 부모님이 원하니까 — 효도 차원에서, 손주 보여드리려고

니체 기준으로 보면, 이건 결혼의 이유가 아니라 결핍의 이유입니다. 내가 부족한 걸 채우려고 하는 결혼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짐이 됩니다.


소소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배울 것

니체의 말이 “그러니까 결혼하지 마라”는 건 아닙니다. “제대로 된 이유로 하라”는 겁니다.

첫째,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 먼저 되기

14장 ‘벗에 대하여’에서도 나왔죠. 고독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서 있을 수 있는 두 사람이 만나야, 기대는 관계가 아닌 함께 가는 관계가 됩니다.

둘째, ‘무엇을 함께 만들 것인가’를 묻기

니체는 결혼을 “창조하려는 의지”라고 했습니다. 꼭 아이가 아니어도 됩니다. 함께 만들어갈 삶의 방향, 가치, 프로젝트. “이 사람과 함께 뭘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이 사람이 좋은가?”보다 중요할 수 있어요.

셋째, 결혼을 ‘도착지’로 보지 않기

결혼하면 행복해질 거야, 결혼하면 안정될 거야 — 이런 생각은 결혼을 목표로 만듭니다. 하지만 결혼은 목표가 아니라 시작점입니다. 거기서부터 뭘 할 건지가 진짜 질문이에요.


마무리하며

니체의 질문은 단순합니다. “너는 왜 결혼하려 하는가? 그리고 그 결혼으로 무엇을 창조하려 하는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할 계획이든 안 할 계획이든 — 이 질문은 한 번쯤 스스로에게 던져볼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답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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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뱀에 물린 상처’ — 복수하지 말라, 하지만 이유가 다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9장, “뱀에 물린 상처에 대하여”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장입니다.

짜라투스트라가 나무 아래서 잠들었다가 뱀에게 목을 물립니다. 깨어난 그는 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독을 도로 가져가라. 너는 내게 독을 선물할 만큼 부유하지 못하.”

복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용서해서가 아닙니다. 네가 나를 해칠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니체가 말한 ‘복수하지 않는 이유’

보통 “복수하지 마라”는 도덕적 가르침입니다. 복수는 나쁜 것이니까, 용서가 미덕이니까.

니체는 다릅니다. 그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네가 적에게 복수하면, 너는 그와 같은 수준에 서는 것이다.”

복수하지 않는 이유는:

  • 용서가 고귀해서가 아니다
  • 복수가 비도덕적이어서가 아니다
  • 상대가 나와 같은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뱀이 물었다고 뱀처럼 물어뜯으면, 나도 뱀이 됩니다. 니체는 그게 싫은 겁니다.


2026년, 우리가 물리는 ‘뱀’들

우리도 매일 작은 뱀들에게 물립니다. 악의적인 댓글, 뒷담화, 부당한 대우, 배신.

현대의 ‘뱀에 물린 상처’:

  • SNS에서 악플을 단 익명의 누군가
  • 내 아이디어를 가로챈 동료
  • 뒤에서 험담하는 지인
  • 이유 없이 무례하게 구는 사람

물리면 아픕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되갚아주고 싶어집니다. 댓글로 싸우고, 똑같이 험담하고, 복수를 계획하고.

그런데 니체는 묻습니다. “그렇게 해서 네가 얻는 게 뭐냐?”


소소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배울 것

니체의 메시지는 “참아라”가 아닙니다. “네 에너지를 그런 데 쓰지 마라”입니다.

첫째, 상대의 ‘독’을 받지 않기

누군가 악의를 보내면, 그걸 받아서 내 안에 품으면 내가 손해입니다. 화가 나고, 잠이 안 오고, 온종일 그 생각만 하게 되죠. 상대는 5초 만에 잊었는데, 나는 5일을 끙끙댑니다.

“네 독을 도로 가져가라”는 건, 그 감정을 내 안에 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둘째, 같은 수준으로 내려가지 않기

되갚아주면 시원할 것 같지만, 결국 나도 그 사람과 같은 게임을 하는 겁니다. 뱀에게 물렸다고 뱀이 될 필요는 없어요.

복수 대신 할 수 있는 건? 그냥 내 할 일을 하는 겁니다. 그게 진짜 ‘이기는’ 방법입니다.

셋째, ‘자격’을 따지기

니체는 “너는 내게 줄 만큼 부유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누군가의 악의에 상처받으려면, 그 사람이 내게 중요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뱀’은 그렇지 않아요.

이름도 모르는 악플러, 별로 안 친한 지인, 스쳐 지나가는 무례한 사람. 이들에게 상처받을 ‘자격’을 줄 필요가 있을까요?


마무리하며

독서모임에서 이 장을 읽고 한 멤버가 말했습니다. “근데 현실에서 이게 되냐? 물리면 화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맞습니다. 화나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니체도 화를 부정하진 않아요.

다만 그 화를 어디에 쓸지가 중요합니다. 상대에게 되갚는 데 쓰면, 나도 그 수준에 머무릅니다. 내 일에 쓰면, 나는 더 높이 갑니다.

짜라투스트라가 뱀에게 한 말을 다시 봅니다. “네 독을 도로 가져가라. 너는 내게 줄 만큼 부유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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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천 개의 목표’ — 남의 정답으로 내 인생을 살지 마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5장, “천 개의 목표와 하나의 목표에 대하여”입니다. 니체가 민족과 가치, 그리고 인간의 목표를 이야기합니다.

“천 개의 민족이 있었고, 천 개의 목표가 있었다. 천 개의 목에 걸린 천 개의 멍에가 아직 없다. 하나의 목표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니체는 묻습니다. 당신이 따르는 ‘좋음’은 누가 정한 건가?


니체가 말한 ‘천 개의 목표’

니체는 여러 민족을 예로 듭니다. 그리스인에게 좋은 것, 페르시아인에게 좋은 것, 유대인에게 좋은 것이 모두 다르다고요.

“어떤 민족에게 좋은 것이 다른 민족에게는 수치이고 모욕이다.”

한 민족이 “이것이 선이다”라고 정하면, 그게 그 민족의 가치가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가치를 마치 절대적 진리인 것처럼 따릅니다.

니체의 포인트는 이겁니다. ‘좋은 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가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걸 만든 건 대부분 그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이었다.


2026년, 우리가 따르는 ‘좋음’은 누가 정했나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좋은 삶’의 기준, 그건 어디서 왔을까요?

우리 시대의 ‘천 개의 목표’:

  • 좋은 직장 — 대기업, 공무원, 전문직. 누가 이게 ‘좋은’ 거라고 정했나?
  • 성공의 기준 — 연봉, 집, 차. 이 공식은 어디서 왔나?
  • 행복한 삶 —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이게 모두에게 맞는 정답인가?
  • 자기계발 — 아침 5시 기상, 독서, 운동. 이것만이 성장인가?

니체 식으로 보면, 이것들은 “우리 사회가 정한 가치”일 뿐입니다. 절대적 진리가 아니에요. 다른 시대, 다른 문화에서는 완전히 다른 게 ‘좋은 것’이었습니다.


소소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배울 것

니체는 기존 가치를 무조건 거부하라는 게 아닙니다. “이게 정말 내 가치인가?”를 물어보라는 겁니다.

첫째, ‘당연한 것’을 의심하기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이 나올 때, 한 번 멈춰보세요. 원래 그런 게 아니라, 누군가 그렇게 정한 겁니다. 내가 동의하는지 안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예요.

둘째, 내 목표와 남의 목표를 구분하기

부모님이 원하는 삶, 사회가 인정하는 삶,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삶. 이게 내가 원하는 삶과 같은가요? 같다면 좋고, 다르다면 다른 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의 목표’를 스스로 세우기

니체는 “아직 하나의 목표가 없다”고 했습니다. 인류 전체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개인에게도 적용됩니다. 천 개의 남의 목표를 따르지 말고, 나만의 하나의 목표를 세우라는 것.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겠다”는 작은 선언 하나면 됩니다.


마무리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의 목표를 살아온 걸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 이었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안정적인 삶 — 이게 내가 정한 건지, 주변에서 주입된 건지 솔직히 구분이 안 된다고요.

니체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질문을 던집니다. “네가 따르는 가치는 누가 만들었나? 그리고 너는 거기에 동의하나?”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천 개의 남의 목표 속에서, 나만의 하나를 찾는 것. 그게 니체가 말하는 ‘창조하는 삶’의 시작입니다.

여러분의 ‘하나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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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말한 ‘진짜 친구’ — 위로만 주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4장, “벗에 대하여”입니다. 니체가 우정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따뜻한 우정과는 좀 다릅니다.

“네가 벗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너를 보여주기 싫다면, 너는 아직 벗을 가질 자격이 없다.”

니체의 우정은 서로 기대는 관계가 아닙니다. 서로를 더 높은 곳으로 밀어올리는 관계입니다.


니체가 말한 ‘벗’이란

니체는 친구를 **”너의 최선의 적”**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상하죠? 친구가 왜 적인가.

“너의 벗 안에서 너는 너의 최선의 적을 가져야 한다. 그에게 반대할 때 너는 그에게 가장 가까워진다.”

니체가 말하는 진짜 친구는:

  • 네 말에 무조건 동의하는 사람이 아니다
  • 네가 힘들 때 그냥 “괜찮아”라고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 네가 틀렸을 때 틀렸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 너를 편하게 두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 자극하는 사람이다

니체는 또 말합니다. “고독을 견딜 수 없는 자는 친구를 가질 자격이 없다.” 혼자 설 수 없는 사람은 친구에게 기대기만 하고, 그건 우정이 아니라 의존이라는 거죠.


2026년, 우리의 ‘관계’를 돌아보면

SNS에는 친구가 수백 명입니다. 카톡 연락처에도 수십 명이 있죠. 그런데 니체 기준으로 보면, 그중에 진짜 ‘벗’은 몇 명일까요?

현대의 관계 패턴:

  • 위로 자판기 — 힘들다고 하면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만 반복하는 관계
  • 공감 중독 — 서로 힘든 이야기만 나누고, 거기서 끝나는 관계
  • 표면적 연결 — 좋아요 누르고, 생일 축하 댓글 달고, 그게 전부인 관계
  • 동의 강요 — 내 편 들어주는 사람만 친구로 여기는 관계

니체 기준으로 보면, 이건 우정이 아니라 상호 위안에 가깝습니다. 서로를 성장시키지 않으니까요.


소소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배울 것

그렇다고 친구에게 매번 쓴소리만 하라는 건 아닙니다. 니체가 말하는 건 관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에요.

첫째, 혼자 있는 시간을 먼저 견디기

니체는 “고독을 못 견디면 친구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외로워서 만나는 관계는 서로에게 짐이 됩니다.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도 건강한 관계가 됩니다.

둘째, 불편한 말을 해주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기

“그건 네가 좀 이상한 거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친구. 듣기 싫지만, 그게 진짜 친구일 수 있습니다. 내 말에 항상 동의하는 사람은 편하지만, 나를 성장시키진 않아요.

셋째, 나도 ‘좋은 적’이 되어주기

친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그래도 네 선택이니까”라고 넘기지 않는 것.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지만, 진심으로 말해주는 게 진짜 우정입니다. 물론 방식은 부드럽게.


마무리하며

독서모임에서 이 장을 읽고 서로 물었습니다. “우리 모임은 니체가 말한 ‘벗’에 가까운가?”

매주 만나서 책 읽고, 서로 다른 해석으로 부딪히고, 가끔은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하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꽤 니체적인 관계더라고요.

편하기만 한 관계는 좋지만, 거기서 멈추면 서로 제자리입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지만 더 나은 곳으로 밀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니체 기준으로 당신은 운이 좋은 겁니다.

여러분에게 ‘최선의 적’이 되어주는 친구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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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순결’ — 억누르지 말고, 승화시켜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3장, “순결에 대하여”입니다. 제목만 보면 금욕이나 순결을 강조할 것 같지만, 니체는 정반대 이야기를 합니다.

“순결이 어떤 사람에게는 미덕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거의 악덕이다.”

니체는 묻습니다. 당신의 절제는 진짜 선택인가, 아니면 그저 욕망을 감당 못 해서 억누르는 것인가?


니체가 비판한 ‘가짜 정결’

당시 기독교 문화에서 정결, 금욕은 절대적 미덕이었습니다. 욕망은 나쁜 것이니 억눌러야 한다고요. 니체는 이게 위선이라고 봤습니다.

“감각을 경멸하는 자들에게 나는 권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경멸 자체가 욕정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욕망을 억누르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집착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먹고 싶은 걸 참으면서 온종일 음식 생각만 하는 것처럼요. 겉으로는 절제하는 것 같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그것에 더 사로잡혀 있죠.

니체가 말하는 진짜 정결은 억압이 아니라 초월입니다. 욕망과 싸우는 게 아니라, 그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


2026년, 우리가 억누르고 있는 것들

이 장을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뭔가를 억누르면서, 그게 ‘절제’라고 착각하고 있진 않을까?

현대판 ‘가짜 순결’:

  • 소비 욕구 — 안 사겠다고 다짐하면서 매일 장바구니만 들여다보는 것
  • 인정 욕구 — SNS 끊겠다면서 은근히 반응 확인하는 것
  • 비교 습관 — 남 신경 안 쓴다면서 계속 비교하는 것
  • 분노 — 화 안 낸다면서 속으로 곪아가는 것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니체 말대로, 억누름 자체가 또 다른 집착이 되어버려요.


소소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배울 것

니체의 해법은 단순합니다. 억누르지 말고, 방향을 바꿔라.

첫째, 욕망을 인정하기

“이걸 원하면 안 돼”라고 자책하는 대신, “나는 이걸 원하는구나”라고 인정하는 게 먼저입니다. 인정해야 다룰 수 있어요. 부정하면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둘째, 에너지를 돌리기

니체는 예술가들이 창작열에 빠지면 다른 욕망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고 했습니다. 몰입할 무언가가 있으면, 억지로 참을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꼭 예술이 아니어도 됩니다. 운동, 글쓰기, 공부, 사이드 프로젝트 — 에너지를 쏟을 곳이 있으면 쓸데없는 곳에 마음이 덜 갑니다.

셋째, ‘나에게 맞는 절제’를 찾기

니체는 정결이 “어떤 사람에게는 미덕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악덕”이라고 했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습관, 남들이 하는 절제가 나에게도 맞으란 법은 없어요.

아침형 인간이 모두에게 맞는 게 아니듯, 절제의 방식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중요한 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 것입니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절제를 ‘참는 것’으로 배웠지만, 니체는 다르게 말합니다. 진짜 강한 사람은 욕망을 억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에너지로 다른 걸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요.

지금 억누르고 있는 게 있다면, 그 에너지를 어디로 돌릴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그 욕망을 글을 쓰는데 이용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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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새로운 우상’이 소소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1장’,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를 읽었습니다. 니체는 여기서 국가를 ‘새로운 우상’이라 부르며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국가라고? 그것이 무엇인가? 자! 이제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대들에게 민족의 죽음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국가는 모든 냉혹한 괴물 가운데서 가장 냉혹한 괴물이다. 그 괴물은 냉혹하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

19세기 독일 철학자의 이야기가 2026년을 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생각보다 많습니다.


니체가 말한 ‘새로운 우상’이란

니체 시대에 신의 권위가 무너지자, 사람들은 새로운 믿음의 대상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국가였죠. 국가는 “나는 곧 민족이다”라고 말하지만, 니체는 이것이 거짓말이라고 봤습니다.

국가는 개인의 고유함을 지우고 모두를 똑같이 만들려 합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국가가 정해주고, 사람들은 그 기준에 맞춰 살아갑니다. 니체의 표현대로라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태어난 곳에서 국가가 발명되었다”는 것이죠.


2026년, 우상은 어디에나 있다

니체가 비판한 건 단지 정부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모든 것이 ‘새로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우상들:

  • 알고리즘 —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보여주는 것만 보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것
  • 트렌드 — “요즘은 다 이렇게 한다”는 말에 나의 취향과 판단을 포기하는 것
  • 성공 공식 — “이렇게 하면 된다”는 누군가의 프레임에 내 삶을 끼워 맞추는 것
  • 여론 — 다수가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니체의 경고는 명확합니다. 이런 것들이 “나는 너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할 때, 의심하라는 것이죠.


소소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배울 것

그렇다면 니체처럼 세상과 단절하고 산속에서 살아야 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니체도 그걸 말한 게 아닐겁니다.

첫째, 내가 왜 이것을 원하는지 물어보기

“다들 그러니까”, “원래 그런 거니까”라는 이유로 선택하고 있다면, 그건 내 선택이 아닙니다. 직장을 다니는 것도, 투자를 하는 것도, 심지어 이 글을 읽는 것도 — 내가 진짜 원해서인지 한 번쯤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경계하기

니체는 말합니다. “국가가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인간이 시작된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것, 모두가 달려가는 곳에서 한 발 물러서서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그곳에 진짜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그냥 군중심리인지.

셋째, 작은 영역에서 ‘나의 것’을 만들기

거창한 혁명이 아니어도 됩니다. 취미, 생각, 글쓰기, 대화 — 작은 영역에서라도 남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것. 니체가 말한 “창조하는 자”는 예술가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마무리하며

니체를 읽으면 불편해집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흔들리니까요. 하지만 그 불편함이 생각의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독서모임에서 이 장을 읽으며 나눈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게 있습니다. “우리도 결국 무언가의 우상을 따르며 살고 있는 거 아닐까?”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죠.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새로운 우상’을 따르고 계신가요?